2. 지역주의 경향과 민주화와의 관계
1) 지역주의 선거연합의 등장배경으로서의 민주화
민주화로 인해 야기된 민주-반민주균열의 약화는 지역주의 선거의 강도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. 민주화에 대한 여당과 야당 노선의 수렴은 정당경쟁의 수단으로서 민주 대 반민주의 균열을 약화시킴으
민주주의적 기제들이 극대화 되어야 한다.
3. 지역주의, 지역할거주의의 극복
40여년동안 한국정치를 지배해 온 민주·반민주의 구도가 최근 해체되면서 이를 대치할만한 새로운 발전적인 균열구조가 생겨나지 않아 전근대적인 지역균열구조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. 이는 여러 지역출신 정치
민주화 이전 시기는 4·19 혁명으로 등장한 제 2공화국 시기를 제외하면 남한의 국가는 권위주의 혹은 군부독재 정권이었기에 주요 균열은 민주 vs 반민주 구도였다.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향을 띤 운동 역시 사회주의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‘민주주의의 수호’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. 이러한 상황은 80
가진다.
김영삼
안정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5년간 ‘문민화’ 과정을 통해 탄 군부 정치 환경 조성
김대중
3당 합당으로 인해 적대적 소수파로 전락. 정계 은퇴와 새로운 정당 창당 등의 노력
3당 합당
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적 대립 구도가 이념적 요소를 가미한 본격적인 지역구도로 전환
가진다.
김영삼
안정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5년간 ‘문민화’ 과정을 통해 탄 군부 정치 환경 조성
김대중
3당 합당으로 인해 적대적 소수파로 전락. 정계 은퇴와 새로운 정당 창당 등의 노력
3당 합당
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적 대립 구도가 이념적 요소를 가미한 본격적인 지역구도로 전환
지역균열과 이념균열 – 1) 1987년 체제의 수립
13대 대통령 선거(1987년 선거)
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체계를 형성한 정초선거
<87년 체제에서 주목할만한 특징 2가지>
1. 58년 체제의 연장 혹은 복원 (58년 체제와의 유사성)
2. 지역주의 정당체계의 형성 (58년 체제와의 차이점)
<중 략>
1980년대 말 한
반민주적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. 5월 15일에 발표된 전남대학교 대의원총회의 「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」라는 유인물에 따르면 당시의 정치적 핵심을 신현확, 최규하, 전두환 등 3인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퇴진, 비상계엄의 해제, 구속된 민주인사의 석방과 복직-복권을 주장하였다.
당시
길로 접어들게 되었다. 그러나 이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. 이 땅을 점령한 미군의 군정은 이승만의 민간독재로 이어졌고, 그것은 다시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로 이어졌다. 무려 40년간에 걸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반민주적인 정치질서가 이어졌던 것이다. 민주주의는 먼 곳에 있었다.
민주항쟁이다. 부마항쟁의 민중적 기초는 이 지역의 산업구조와 당시의 계급갈등의 양상에서 고찰될 수 있다. 당시 부산의 산업구조는 수출지향적 경공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것 역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어서 당시의 세계경제의 위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.